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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제들/영화

(Minority report, 2002) 마이너리티 리포트 감상

by manydifferent 2019. 3. 4.

 


스릴러의 매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의심없이 서사를 쫒게 만드는 힘에 있다. 상심에 빠져있는 나는 예술 영화보다는 스릴러를 보겠다는 마음이다.


 등장 인물들은 하나 같이 광기에 빠져있다. 인물들이 의심에 빠지면 관객도 덩달아 생각을 시작하게 마련이니까. 영화 초반부 범죄 예방 시스템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명백한 불륜의 현장을 목격한 남자가 등장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 일 것이다.


 영화 도입부에 한 남자가 자신의 부인과 그녀의 불륜남이 정사를 나누는 것을 목격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들은 남자가 지켜보는 줄도 모르는 채 침대 위에서 은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가위를 품에 안고 그들이 누워있는 침대 아래에서 흐느껴 운다. 그는 가위를 높이 치켜들고, 피해자로 지목된 여자의 가슴팍을 무섭게 내려찍는다. 그 순간 앤더튼은 기지를 발휘해 극적으로 그를 저지한다. 이는 '예언된 범죄는 일어나는가' 에 대한 물음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적인 배치로 보인다. 범죄의 가능성은 어떤 위협이라는 것을 관객에게 충분히 숙지 시킨 후 이내 안도를 선물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관객에게 영화 내의 세계로 길을 터주는 셈이다. 어떤 의심도 없이 앤더튼의 행보를 지켜볼 수 있도록.


  이어서 범죄 예방 시스템에 관한 광고들이 화면을 채운다. 영화 속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한 광고지만, 이는 관객의 무의식을 이용하는 설득의 장치이기도 하다. 그리고 곧 몇 개의 장면이 지나간 후, 살인자의 이름이 각인되어 떨어지는 예언의 구슬 속에는 보란 듯이 앤더튼의 이름이 오른다.


 예언 속 살인자 자리에 이름을 올린 앤더튼의 광기는 무엇일까. 이 역시 어떤 의심은 아니다. 위트워, 혹은 그 배후의 모함을 전제로하는 시스템에 대한 맹신에 가깝다. 나는 결백하며, 시스템 또한 무결하다. 관객 또한 이러한 광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극 초반부 위트워를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인물로 묘사한다.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가' 위트워의 질문은 지극히 상식적인데도, 불필요하며 심지어 범죄 예방 시스템의 효용성을 대안없이 비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우리에게 어떤 위협과, 이 위협을 제거하는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장치들을 마주치며 영화의 초반부를 넘어서면 앤더튼의 광기는 천천히 관객에게 전염되기 시작한다. 죄없고 불쌍한 앤더튼은 과연 어떤 음모에 빠져있는 걸까. 관객의 관심사가 그 뭉툭한 점 하나에 수렴하는 순간, 이후에 등장하는 긴장감 있는 장면 간의 호흡 속에서 더 이상 마음 놓고 의심할 시간은 없다. 앤더튼은 범죄 예방국 동료들과 맨 몸으로 멋지게 싸우고, 심지어 그들을 크게 다치게 하지는 않는다. 앤더튼의 젠틀함은 그에 대한 연민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게 한다. 궁지에 몰린 앤더튼이 안구를 교체하는 수술을 하는 장면에서 수상하고 더러운 의사가 혹여 무방비의 앤더튼을 해할까 걱정하느라 마음 졸인다. 아가사와 앤더튼이 인파가 몰린 곳에서 도망치는 장면은 정말 넋을 놓고 바라보게 만든다.


 이거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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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전반적으로 앤더튼이 잃은 아들을 그리워하는 장면과 그로 인해 마약에까지 손을 대고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면서 앤더튼의 광기에 대한 물음을 자연스럽게 해결하려고 한다. 이는 서사를 쫒게 만드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앤더튼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평면적으로 그려지는 결과를 낳는다. 아버지의 사랑. 영화 시작부터 대놓고 의심스러운 인물. 주인공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듯 보이는 예방국의 전 국장.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존재를 순순히 알려주는 시스템 설계자.


 평면적인 인물의 배치는 어떤 위험이 있을까? 그것은 관객이 영화 도중 의심을 품었을 때 잘 짜여진 판이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데에 있다. 서사를 지탱하는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인물들의 관계가 아닐 경우, 이것은 쉽게 위태로워질 수 있다. 물론 이 영화의 매력은 이 서사가 무너지기 전에 이야기를 사랑하게 만든다는 데에 있다. 이성이 다가오기 전에 주인공을 사랑하고, 연민하게 만들며 그 광기를 관객과 공유하도록 하는 힘. 이는 앤더튼을 쫒는 동료들을, 내 몸으로 막아서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굴러 떨어지는 눈알을 쫒으며 함께 절망하는 나를 발견하지도 못한 채, 나는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는 것을 마지막 총성이 잦아든 뒤에야 눈치챌 수 있었다.


2019.03.04 PM.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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