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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제들/짧은 생각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by manydifferent 2021. 1. 20.

연말이 되면 심각하게는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하고 넘어가는 생각이 있다.

그것은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

사실 연말이 아니라도 지긋지긋한 직장에서 퇴사를 하거나, 애증의 학교를 졸업하거나, 제대를 하거나, 살고 있는 집의 계약 기간이 끝날 때도 이런 생각은 우리 머릿 속에 아주 강렬하게, 찾아온다.

요컨대 내가 겪은 시간이 황홀했던, 끔찍했던지간에 그것이 덜컥 끝나버리면 알 수 없는 야릇한 감정이 우리를 뒤덮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는 것이 엄정한 사실 판단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건 그냥 착각이다.

이와 관련해 먼저 짚어야할 것이 있다. 우리에게 과거로부터 현재에 대한 기억은 있지만, 미래에 대한 기억은 없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야릇한 감정은 언제까지나 우리가 '이미 종결된' 과거의 사건을 현재에 아울러 골똘할 때에만 생긴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엇인가가 끝났다고 의식하는 순간에만 과거의 수많은 사건들이 현재의 나에게 물밀듯 밀려오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마치 한 편의 영화 속에 이미 존재하는 타임라인처럼, 죽기 전까지 우리에게 일어날 미래를 모두 알 수 있다면?

내가 끼니조차 챙겨먹지 못할 정도로 곤궁한 20대를 보내는 와중에 50대에 갑작스레 로또에 당첨되어 살림살이가 꽤나 나아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 밤마다 주린 배를 움켜쥐면서 50대의 미래는 너무나! 멀리 남았다고, 야릇한 마음을 품지 않을까?

사실 이런 가정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시간이 너무 빠르다' 는 생각과 '시간이 너무 느리다' 라는 생각을 번갈아가며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바로 2020년이 끝나버렸다는 생각처럼, 이미 알고 있는 종결된 과거를 떠올릴 때, 그리고 (예시라기엔 너무 사소하지만) 택배를 기다릴 때처럼, 예측 가능한 미래가 나를 기다릴 때이다.

정말 2020년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버린걸까? 아니면 퇴근을 앞두고 영겁같은 5분을 기다리던 매일,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며 조바심을 내던 며칠처럼 미래에 나를 찾아올 기대를 안고 기다렸던 모든 것들을 그냥 쉽게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매해 희비가 교차하는 이런 야릇한 감정들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결국은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이기 떄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 무자비한 말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현재를 어떻게 인식하냐에 따라 우리 감정이 크게 변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2020년의 마지막 달이 찾아왔다. 2020년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2020년은 너무 끔찍했다.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며 한 해를 보내고있는지. 생각해본다.

2020.12.02 오후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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