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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제들/공황과 우울

1. 공포가 공포를 만든다

by manydifferent 2021. 3. 16.

나는 당신이 놀이기구 정도는 무서워하길 바란다. 아니면 번지점프라도. 그렇지 않으면 내가 느끼는 걸 설명할 수 없으니까.

어릴 적에 나는 내가 조금은 용감한 줄 알았다. 그래서 소풍으로 간 유원지에서 타게 된 놀이기구도 적당히 즐거워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서있던 줄이 짧아질 수록 심장은 요동치고, 롤러코스터 좌석에 앉아 조여내려오는 안전바의 무게를 느꼈을 때 나는 내가 느끼는 전율이 공포와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보통 놀이기구를 잘 타고, 번지점프를 해내는 사람을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냥 그 분야에서는 덜 용감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이런 걸 못한다는게 나쁜 건 아니니까.

왜 놀이기구 얘기냐고? 내 공황장애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어서 그랬다. 사람들은 공황이라고 하면 아주 멀고 추상적인 느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근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나는 놀이기구가 꽤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놀이기구도, 번지점프도, 안전장치가 잘 작동할 거라고 생각한다. 논리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내 느낌은 그렇지 않다. 내 심장은 빨라지고, 땀이 나고, 머리가 아프고, 불쾌한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온몸으로 뻗친다. 숨이 막히는 느낌, 죽을 것 같은 기분, 이 모든 것들이 빠른 시간안에 일어나고 고조된다.

공황발작이 무슨 느낌이냐고? 당신이 맞닥뜨렸던 전율과 공포를 떠올려보라. 위험을 감지했을 때 손발이 굳고,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차오르는, 몸이 평정을 잃고 흔들리는 그 순간들. 식은땀 나게하는 찰나의 공포가 아무 이유도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갑자기 찾아온다. 이 불쾌하고 끔찍한 손님은 당신의 몸 구석구석을 훑고, 마침내 폐와 목, 머리를 조여온다. 그리고 그 느낌은 10분이 가깝도록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당신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리고 가장 끔찍한 부분은 따로 있다. 이런 일을 비슷한 환경에서 몇차례 겪고 나면, 비슷한 환경에서 공황발작이 일어나는 빈도가 증가한다. 그리고 공황발작이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공포가 공포를 만드는 것이다. 상식적이지 않고, 현실과 동떨어진 공포의 경험. 그 악몽 같은 시간 속으로 언제든 끌려갈 수 있다는 무기력함이 마음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계속

2021.03.1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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