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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담배 중독 일지

담배 중독 일지 2화

by manydifferent 2019. 2. 4.

담배 중독일지 2

1.29

담배를 다시 피우고 있다. 흡연량은 작지만 여전히 담배에 대한 생각이 머리 한쪽에 남아있다. 피로감이 부쩍 크게 느껴진다.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흡연자인데, 전자담배를 피운다. 얼결에 통화 중에 전자담배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이미 담배를 피운다는 전제를 두고, 전자담배를 기왕이면 좋은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중독 위의 삶을 살고 있다.

1.30

잠을 조금 설쳤고, 평소보다 피곤하다. 담배를 끊고 가장 행복했던 일은 주말에 일찍 눈이 떠진 것이었다. 술과 담배에 절어있을 때는 보통 질낮은 수면을 오후까지 이어나갔다. 깨지도 못하고, 푹 자지도 못한 채로 끊임없이 불쾌한 꿈을 꾸었었다.
아침마다 몸을 축내는 잠을 잘 필요는 없다.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이유가 다시 생각난다.

1.31

어젯밤에는 하려고 떠올린 일들이 많았는데, 해야할 일을 얼추 정리하고 침대에 누웠더니 잠이 쏟아졌다. 몸이 괜찮으면 일어나는 날도 있다. 하지만 피곤이 짓누르는 무게에 따라 한 겹 덮힌 이 이불을, 나는 걷어낼 수도 파묻혀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별안간 아침 컨디션은 아주 좋았다. 하지만 어젯밤 제대로된 여가를 보내지 못했다. 꽤 오랜 시간을 수면에 투자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다.
내 활동량에는 큰 변화가 없으므로, 나는 다시 늘어난 흡연량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음모론자가 된 것 같다. 아마 나는 죽을 때까지 음모론자로 살아야할 것 같다. 하지만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고, 끊임없이 기록하고 공부하면 좋겠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들은 흡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어떤 것이 내 생각인 지 알 수도 없고, 눈치를 채더라도 증명하기 어렵다. 알코올 중독자가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인지 자가 진단을 내리는 상황을 생각해보라. 알코올에 대한 지속적이고 눈치채기 어려운 형태의 갈망은 판단 체계를 무너뜨려놓는다.)

2.1
어제는 담배를 별 생각없이 피웠다. 주문한 전자담배가 왔고, 저녁부터 전자담배를 썼다. 별 생각이 없어지기 더 좋은 환경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늦게 자지 않았는데도 아침에 피곤했다. 일어나 가장 먼저 세면대 앞에 섰을 때 목 어딘가를 뻐근하게 짓누르는 피로와 함께 뻣뻣한 눈꺼풀의 감각이 느껴졌다. 예전에는 매일 느끼던 것이다. 담배를 많이 피우고, 술을 많이 마시던 때.
이런 몸 상태는 모르는 사이에 내 삶의 가능성들을 제약한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전자담배를 세 모금정도 들이마셨더니,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너무 극적이라 어이가 없었다. 나는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한 일상에 불필요한 피로와 각성을 끼워넣고 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떠오른 생각. 오랜만에 담배를 피우면 몸에서 받지를 않는다. 확실히 담배를 조금 피우고 그 주말에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서, 기침이 나오고 숨을 쉬기
힘들었다. 왜 평소같은 몸상태에서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반응이 금세 사라지는 걸까?

2.4

담배를 피우면 눕게 된다. 잠을 잘 못잔다. 목과 머리를 연결하는 어딘가가 망가진 액정에 끊임없이 재생되는 백색소음에 파묻혀있는 것 같다. 내가 등장하지 않은 영화의 스텝롤에는 내 이름이 있다. 영화는 지탄 받는다. 아래에서 위로 끔찍하게 천천히 글자가 오르는 동안 나는 생각한다. 무엇이 내 인생이 망가져있다고 느끼게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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