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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와 글쓰기/일기

2019년 8월 11일 제목은 없는 것이 제목인 것

by manydifferent 2019. 8. 11.

야구

 

고척스카이돔 야구장에 다녀왔다. 두산과 키움의 경기. 10:2로 두산이 졌다.

 

야구장은 교회랑 닮았다고 생각했다.

크고, 사람이 많고, 정렬되어있고, 노래가 나오고, 율동을 한다.

차이가 있다면 야구장의 사람들은 기분이 좋거나 좋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거다.

(아니면 기분이 좋거나 좋지 않을 예정 상태에 있다.)

 

야구 경기는 공을 치거나 공을 치려고 하는 상황에서 긴장감이 최고가 된다. 경기는 꽤 오랜 시간 진행되는데, 긴장감이 떨어지는 타이밍에는 누군가 춤을 추거나, 북을 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흥미로운 것을 보여준다. 지루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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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찾기

 

목적지는 꽤 가까운 거리에 있는 건물이었다. 지도를 보고, 건물이 대충 어디쯤 있는지 확인했다. 나는 원래 오른쪽으로 가야할지 왼쪽으로 가야할지도 몰랐는데, 건물이 좌측 대각선 어딘가에 있다는 걸 알아내자, 마치 목적지가 눈에 보이는 것 처럼 길을 찾기가 쉬웠다.

 

 나는 늘 내가 길을 잘 못 찾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상에는 길을 잘 찾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길치라고 한들, 눈에 보이는 목적지는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길을 찾다가, 어떤 이유로 마치 목적지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고, 쉽게 길을 찾았다. 그리고 내가 아는 대부분의 익숙한 곳들은 그런 식으로 찾는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목적지가 '눈에 보이는 것 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무언가를 찾으면 될 것이 아닌가?

 

눈에 보이는 곳으로는 대부분 잘 갈 수 있으니까. 나는 그 답으로 이미지와 언어를 꼽는다.

1. 길이 잘 찾아지는 상태는 머릿 속에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는 상태이다.

2. 길을 잘 찾아지는 상태를 쉽게 만들어내거나, 만들어낸 가짓수가 많은 사람을 길을 잘 찾는 사람이라고 한다.

3. 언어로 머릿 속에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도울 수 있다.

4. 공간을 활용하는 말하기 방법은 기초로 활용할만한 몇 가지가 있다. (다른 지점과의 관계를 지칭하는 표현들)

5. 3,4를 활용하여 1에서의 '머릿 속에 그림을 그리는 과정' 의 경험을 늘려 2의 '길을 잘 찾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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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

 

앨범을 샀다. 장얼과 국카스텐,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다음으로 1집을 챙겨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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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사이라는 것은 나를 버리고 사이가 되는 것. 이성복은 그렇게 말한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사이와 사이가 아닌 것을 만나는 일이다.

여러 단계를 건너 뛰거나 무시하기 때문에 보통 타인을 만나는 일보다 당황스럽고, 불쾌할 수 있는 일이다.

세 개의 점을 한 점을 중심으로 뻗어 잇는다고해서 끝과 끝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관계의 가짓수만큼 별개의 조율하는 과정은 언제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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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 서적을 좀 읽어야할 것 같다. 지식이 생기면 열리는 세계가 있다.

수학 공부와 더불어서,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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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관계에는 집중하되, 관계 속에서의 '나'에 과도하게 집중해서는 안 된다.

 

둘 사이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내가 존재하는 것인데, 여길 벗어나서 개별적인 내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면 자폐적이다.

 

이것은 개인의 서사 집필과는 별개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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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무질서인 것 같았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 질서가 보인다.

경험을 익숙한 단위로 쪼개고 이를 통해 새로 받아들일 정보를 판단하려는 기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들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닮은 누군가로 먼저 보이는 일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다.

생소한 외국어 말소리를 익숙한 모국어로 듣는 일도 바로 이것인데,

팔다리를 움직이고, 말을 하고, 눈으로 보고, 듣는 일은 대부분 이런 비슷한 느낌을 준다.

내가 아는 단위로 새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질서의 실체다.

 

경험들은 점성 있는 액체처럼 시간이 갈 수록 엉겨붙어 단위를 이룬다. 그 단위의 모양들은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는 밑거름이 된다. 이것은 해당 단위에 맞는 틀을 주조해, 체로 치듯 정보를 걸러낼 때 쓰는 방식이다. 이 틀이 마련된 경우 새로운 경험을 처리하는 힘이 덜 들게 된다.

 

 그러니까 질서는 내 착각이다. 세상은 그대로고, 나는 익숙한 것을 질서처럼 보는 것 뿐이다.

다른 관점으로는, 대부분의 일들이 꽤 비슷하게 반복된다는 뜻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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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1 오후 10:54

+ 8.11 오전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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