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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와 글쓰기/일기

2019년 9월 16일 뭐가 달라졌 나

by manydifferent 2019. 9. 16.

 

 

날이 시원해지고 있다. 이틀 후면 최고기온이 5도 가까이 떨어질 거다. 나는 그게 좋다.

 

 

 지독하게, 하기 싫은 건 안 했다. 시키는 건 잘 안 했다. 다들 공연히 하는 것도 안 했다. 그런데 요즘 그렇게 안 했던 것들이 하고 싶다. 좋은 점들이 보인다.

 

 사람한테 정 붙이는 걸 안 했다. 상대방이 날 딱히 좋아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 얘기를 하는 것이 시덥잖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잘 포장할 수 없거나, 잘 포장될 수 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 말을 많이 하면,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스무 살 이후로 새로 사귄 친구가 없었다. 나는 카카오톡이 없다. 연락처를 지운다. 굳이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에 친구가 생겼다. 나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에 대한 수많은 얘기를 들었다. 그러고도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 기억을 좋게 기억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나는 그게 신기했다.

 

 

  시청에서 근무하던 때에 나와 같이 있던 사람들은 날 참 잘 챙겨줬다. 하지만 난 왜인지 그들과 거리를 뒀다. 그게 맞는 일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을 하기 위해 시청에 다시 왔다. 그들 중 두 명이 결혼을 한다고 했다. 나는 결혼식에 가야하는게 맞는지 먼저 생각했다.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가야할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근데 나는 그 사람들을 좋게 기억한다. 사실 난 그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런데 왜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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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 살에서 스물 셋까지의 기억은 잡다한 것들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인상이다. 어느 부분에는 시커멓게 얼룩이 져있다. 어떤 부분은 찢어져있고, 어떤 부분은 심하게 울고, 어떤 부분은 선명하다. 또 어떤 부분은 오려서 간직하고 싶고, 어떤 부분은 도려내고 싶다.

 

내 몸을 다룰줄 알게 되고부터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다. 폭발하듯 머릿속을 채우던 감정과 생각들이 얼마간 가라앉았다. 나는 이제 어떤 것이 싫어서 몸부림치는 것을 멈춘다. 이제는 어떤 것을 좋아할지 하나씩 선택해야하는 시간이 왔다.

 

나는 결혼이 하고 싶어질까? 내가 완성해온 가치관들을 깨고 얼굴만 같은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이제 진짜로 선택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물론 여전히 나도, 나의 논리도 확고하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게 될까? 나는 앞으로 수학을 공부 하게 될까? 아니면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어떤 활동들을 나는 사랑하게 될까? 나는 그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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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시작했다. 텅 비어놓은 공간에 커다란 무언가를 마련한 것만 같다. 예전엔 그게 터무니 없이 커보였다. 일을 하는 것이, 얼마 없는 나의 조그만 공간을 가득 채워 나를 그 무언가로 만들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다른 공간들이 보이고, 그것이 꽤 크다는 걸 안다. 나는 모든 시간을 즐거움으로 채우지 못한다. 어쩌면 이게 충분한 공간일지도 모른다. 나는 대답을 미루어놓기로 한다.

 

 

 

2019.09.16 오후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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