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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와 글쓰기/일기

2019년 9월 22일 나로 이해하는

by manydifferent 2019. 9. 22.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와 같은 행동 양상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나' 로 타인을 이해한다면, 타인은 '나'의 무수히 많은 확장이다. 각자를 이루는 세부 사항은 다르겠지만, 이런 관점에서 보편적인 존재 '나'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억은 타인에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억일 가능성이 높다.


본인에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억을 타인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 명의 사람은 여러 경험과 그와 관련된 기억들로 이루어진다. 그것들은 그 사람의 가치관을 결정하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나'의 주위에는 다양한 형태의 보편적 타인들이 존재한다. '나'는 높은 확률로 그들로부터 무시받거나, 어딘가 이상하거나 모자란 취급을 받거나, 이해받지 못한다.
그렇게 '나' 는 본인의 서사를 타인에게 전하는 일을 번번히 실패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정을 붙이려고 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은 아닐까? 나는 쉽게 이해될 수 없었고, 내 서사에 대한 타인의 상호작용에 대처하는 법을 몰랐다. 나에게 한동안 세상은, '나'에서 외부로 향한 함수로 표현한다면, 함수식도 주어져있지 않고, (내가 해볼 수 있는 한정된 경험 속에서) 어떤 값을 넣어도 규칙을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쉽게 사랑받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에게도 종종 사랑받지 못했으므로) 타인이
나를 사랑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나름의 합리적인
결과를 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가 이해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어디에 있을까? 스스로의 기억을 이해하거나, 이해받거나. 그 과정은 상호적일 것이다. 결국 '나'는 이해하면서 이해받는 어떤 생각을 찾는다. '나'를 이해하는 나와, '나'를 이해하는 타인을 찾았을 때, 나는 '보편적인 나' 가 되고, (세상에 대하여) 비로소 완전하다고 느낄 것이다.



2019.09.22 오전 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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