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주제들/요리

관자 버터구이는 좋은 친구였어

by manydifferent 2019. 3. 23.

때는 2019년 3월 21일. 나는 다시 해묵은 난관에 봉착하였다. 



서론



 저녁에 요리를 해먹고 싶은 날이면 나는 수산물 코너 앞에서 늘 발을 떼지 못했다. 포장된 회와 생물 대하, 피꼬막, 구이용 연어. 나는 어떤 것을 메인의 자리에 앉혀야 하는지 고심하는 통에, 바구니에 어떤 식재료도 담지 못한 채 동네 마트의 오래된 혼령처럼 그저 있었다.


 그곳에는 관자가 있다. 내장을 손질하지 않은 피조개 관자. 나는 그 중 가장 모험적인 식재료를 골랐다. A와 B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죽음을 택하는 비극의 주인공처럼. 



1장 준비하다


 메인 식재료를 고르고 나면, 장보기는 쉬운 일이 된다. 나는 버터와 마늘, 브로콜리를 샀다. 관자 버터구이를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근데 왜 관자 버터구이라고 할까? 스팸 김치볶음밥 같은걸까. 어쩌면 이 음식은 버터구이가 메인이고 관자가 부재료일 지도 모른다.


 

( 멍게는 그냥 멍게 생각나서 샀음)



 나는 초보 요리사다. 그래서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버터 1회분씩 나눠서 냉동 보관하기, 계란 한 손으로 까기, 재료 일정하게 썰기 등등.. 생각해보니 꽤 많다.


 그 중 버터를 소분할 절호의 기회가 생긴 거다.



(통으로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다. 요즘 포장이 좋다. 굳이 다 뜯어서 나눌 필요는 없었다. 일단은 대충 쓰기로 했다.





(마늘을 썰고 브로콜리를 잘랐다. 버터도 잘랐음)




 눈치챌 수 있겠지만, 브로콜리를 너무 크게 잘랐다. 이럼 참 안 익는다. 허허.


 그리고 관자의 내장을 분리하고, 두 조각으로 나눴다. 잘 익으라고 칼집도 냈다.





(자르기 전이 더 보기 좋아서 그냥 이거 올림)




내장과 관자를 연결하는 끈막 같은게 있는데, 칼로 톡 끊어서 잘라내는게 좋다. 나는 손으로 잡아 뜯어서 깨끗하지가 않았다.




2장 조리하다



 


 (팬에 처음 뭘 두르고, 볶을 때가 제일 설렌다)




버터를 녹이고, 마늘을 잠깐 볶아준다. 이 때 냄새가 좋다. 버터는 늘 이런 식이다.




 


(나는 브로콜리가 너무 크다는 걸 이 때 깨달았다)




 관자와 브로콜리를 넣고 중불에 익혀줬다. 후추랑 소금도 뿌렸다.




 3장 먹다


접시에 잘 담아서, 멍게랑 같이 먹었다. 내장도 분리해 여러 번에 걸쳐서 익혀 먹었다. 근데 사진을 안 찍었다.


왜냐면 맛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마음을 비우고 차분하게 다 먹었다.



 4장 평가하다

 

 실패 원인을 밝힌다.


나는 식재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브로콜리는 더 작게 잘라야 했다. 내장에서는 물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이 넣으면 전골이 된다. 조금씩 넣어야 했다.

관자는 내 생각보다 금방 익는다. 더 짧은 시간 조리 했어야 했다. 너무 오래 둬서 질긴 부분이 많았다.


최근 요리를 해보면서 배운 사실들이 있다.


 예를들면 불 조절을 해야한다는 것, 라면을 끓일 때 물을 적당히 넣어야 한다던지하는 것 등을 익히는 것은 요리의 아주 기초에 해당한다. 나는 그걸 몰라서 계란 후라이도 자주 태웠다. 초반에는 이런 사실들을 익혀야한다. (물론 감이 좋아서 이게 자동으로 되는 사람도 많을 거다.)


 그래서 어느정도 기초를 익히고 나면 결국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요소는 식재료 전반에 대한 이해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몇 차례 해본 요리는 꽤 잘했다. 간단한 파스타 종류는 잘 만들었다. 하다보면 물을 끓이고, 면을 얼마큼 삶으며, 팬에 어떤 재료를 언제 넣어야 하는지 등을 나중에는 생각하지 않고도 바로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해본 것의 범위를 벗어난 식재료는 도무지 얼마큼 익여햐 하고, 어떤 특성을 가져서, 어떤 순서로 넣어야하는 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예를들면 관자는 손질 할 때부터 문제였다. 칼집을 내야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부드러워서 토막토막 자르는 모양새가 됐다. 브로콜리는 처음 써봤는데, 생각보다 두껍고 잘 안 익었다.


 여러 식재료를 사용해보는 것이 요리를 능숙하게 하게 되는 길인 것 같다. 그 때 그 때 해본 요리만 하지 말고 이렇게 새로운 것도 해봐야 겠다. 한 번 실패해본 것은 잊지 못한다.


----------


 후기


 내가 만든 것 중에, 사진으로 찍어도 꽤 괜찮았던 음식이 있었다. 근데 첫 글이 실패작이라 처음엔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왜냐면 사실 요리 실패하고 패배자가 된 기분이라서 우울했었기 때문)


근데 평가하는 문단을 적고 나니 실패한 것도 꽤 뿌듯했다. 내 실패 원인을 분석하는 것은 실패를 바라보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기분이 좋아진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