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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와 글쓰기/일기

2019년 4월 1일 변신 합체 하는 나

by manydifferent 2019. 4. 1.

2019년 4월 1일

 

 날씨: 이게 꽃샘 추위인가? 날이 한창 풀리다가 주춤한다. 최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 예보는 며칠 내로 봄이 찾아올 거라고 한다.

 

 일체의 미화 없이 내 맨얼굴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들은 훌륭한 글감이 된다. 내가 쓴 글 중에서 유독 애착이 가는 것은  그런 글감으로 써낸 글이다. 그런 글을 쓸 때는 적당히 고쳐쓰거나 그냥 숨기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이 떠오른다. 이를 내놓는다는 건 마치 실패한 요리의 조리 과정을 생중계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내 삶에서 이만큼 나를 뿌듯하게 만드는 일은 없다.

 

 변신 합체 

 

 나는 전교생 수가 적은 시골 초,중학교를 다녔다. 초등학생 때 과학의 날 행사를 하는 날이었다. 보통은 글라이더, 고무동력기가 대세였고 글짓기나 그림그리기도 참여자가 많은 축이었다. 물로켓을 하는 아이들은 야망가들이었던 것 같다. 당시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그랬다. 나는 주로 고무동력기를 선택 했다. 왠지 멋있었다. 보통은 정해진 시간 안에 고무동력기를 완성하지 못했다. 행사가 끝나고 집에 갈 때 날지 않는 고무동력기를 모형 비행기처럼 잡아쥐고 하교길을 날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5학년인가 6학년 즈음에 과학상자를 도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상자는 선택하는 사람들이 아주 적었다. 왜냐면 과학상자는 비싸기 때문이었다. 과학상자는 1호부터 6호까지 나눠져있는데, 호수가 올라갈 수록 구성이 풍성해진다. 재료도 많이 들어있고, 그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설계도도 다양하게 제공된다. 가격은 1호 20,000원에서부터 6호는 200,000원에 가까웠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부모님을 졸라 2호 정도의 과학상자를 샀다. 그리고 초등학교 과학의 날 행사에서 입상을 했고, 학교를 벗어나 시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당시에 시 대회 참가를 하기 위해서는 과학상자 6호가 있어야했다. 부모님은 꽤 고민했던 것 같다. 비싸도 너무 비싸니까. 근데 내 자존심과 들뜬 마음을 꺾고 싶지 않으셨는지 과학상자 6호를 사줬다. 나는 시골아이였다. 처음 가본 시 교육청 건물은 참 커보였다. 나는 정말 터질듯 떨리는 마음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그리고 해체

 

 나는 사실 과학상자로 뭘 별로 만들어본 적도 없었다. 이것은 핑계가 아니다. 내가 그 대회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 이유같은건 애초에 없었단 거다. 나는 그냥 과학의 날 행사 직전 하루 정도 열심히 뭘 만들어본 정도였다. 그랬는데 마침 참여자가 적은 분야의 입상자가 되어 대회에 참가할 자격이 생겼을 뿐이었다. 물론 대회는 주어진 설계도를 보고 만드는 형태가 아니었다. 주제가 주어졌고, 대회에 참가한 다른 아이들은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내 스스로는 그럴싸한 형태도 만들 수가 없었다.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떠오른 어떤 형태가 있었고, 나름의 설계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는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그건 작동하지 않았다. 그동안 시간이 꽤 지났고, 나는 새로운 걸 구상하고 만들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겁을 먹었다. 주변의 아이들은 하나씩 뭔가 근사한 걸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그렇게 바라봤다. 나는 내가 만든 걸 해체하기 시작했다. 난 작품 없이 대회장을 나왔다.

 

다시 변신 합체

 

 나는 겁을 먹었고 비겁했다. 어쩐 일인지 그걸 오늘에야 깨달았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실패하는게 무서웠던 거다. 그냥 차라리 내가 안 한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다들 내가 대단하다고 말할 때가 행복했다. 하지만 내가 대단하다는 식의 칭찬은 마약 같은 거다. 나를 좀먹는 행복이다. 나는 그즈음에 그런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일의 매력을 나는 몰랐고 오직 칭찬에만 목말라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고도 실패하는 내 모습을 인정하기 싫었다. 난 형편없었다.

 

 나는 그 이후로도 한참을 방황했다. 나는 내가 '대단한 것처럼 보이는' 일에 목을 맸으니까. 중학생 때까지는 그런 행복을 찾는게 얼추 가능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다른 동네로 가게 됐고, 거기에는 나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전교생의 숫자는 내가 다니던 학교보다 30배는 많았는데, 나를 아는 사람은 열 명도 안 됐다. 난 엄청 깨졌다. 그 때 내 욕망은 내 비겁함의 원동력이었다.

 

변신 합체의 과정

 

 이 사실을 떠올리게 된 이유가 있다. 나는 여행 계획서를 쓰고 있었다. 나는 내 꼴리는대로 가출을 한 적은 있어도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고 여행을 간 적은 없었다. 친구와 가는 거랑은 느낌이 달랐다. 그 때는 의견을 모으고, 결정이 되면 그냥 하면 됐다. 가야한다는 것은 이미 확실하니까. 하지만 혼자 여행은 언제든 내가 엎을 수 있다. 계획하다가 마음에 안 들거나 여행을 떠난 내가 걱정되면 그냥 엎어버리면 된다. 난 이게 너무 낯설었다.

 

 아무도 내 결정에 토달지 않고, 이끌어주지도 않는다. 내가 이끌 누군가도 없다. 날짜도 시간도 내가 정한다. 안 가면 그만인 곳을 간다. 안 해도 그만인 것을 한다. 그래서 나는 비겁해지기 쉬웠다. 여행을 계획하다가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생겼는데, 숙소를 예약하면 결정되버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예약 화면을 띄워놓고 정말 한참을 주저했다. (웃긴다. 내가 결정하는 건데 결정이 되버린단다.) 한참을 고민했다. 비겁해도 너무 비겁했다. 아까까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여행지가 작은 걱정 때문에 별로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러니까 별로라서 안 가겠다고 했다. (자발적 신포도 전략이다.) 이건 뭐냐. 그냥 겁먹은 거잖아.

 

  위악이라도 행사해야할 순간이라고 봤다. 그래서 그냥 숙소를 예약하고 기차도 예약했다. 그리고 초등학생인 내가 떠올랐고, 내가 비겁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떠올랐다. 사랑했지만 사랑이 아니라고 말했던 순간들과, 사랑하지 않았지만 사랑이었다고 말한 순간들이 지나갔다. 그 때 내가 만든 것을 해체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근사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아이들을 부러워하는 대신 비참하고 보잘 것 없는 내 모습을 그저 바라봤으면 어땠을까. (정확히는 걔들이 받을 칭찬과 질투어린 시선을 부러워하는 대신, 칭찬과 질투를 갈구하고 있었던 내 모습을 그저 바라봤으면 어땠을까.) 물론 후회는 아니다. 나는 오늘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으니까.

 

 나는 짧은 삶을 산다. 내가 사랑하는 일에 대해서는 정직해야한다. 그것은 현재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그러려면 내가 지금 무엇을 사랑하는 지 알고, 내가 지금 얼마나 비겁한지 알아야 한다.

 

 

 

 

 

2019.4.1 오전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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