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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와 글쓰기/일기

2019년 4월 9일 요양병원에서 본 것

by manydifferent 2019. 4. 10.

 2019.04.09 화요일

 

 날씨: 날이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저녁부터는 퍽 추웠다.

 

 병원 두 군데와, 어떤 대학가를 돌아다녔다. 오늘이 유난하다고 느껴질만큼, 오늘 나는 친절한 사람들만 만났다. 이상한 날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 중 한 곳은 요양병원의 집중치료실이었다. 노인들이 누워있었다.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어 보였다. 나는 주변을 짧게 둘러봤다. 병실에 오면 나는 이렇게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본 짧은 시간보다도 더 찰나에, 늘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이제는 9년도 넘은 것 같다. 그 병원의 중환자실은 환자용 엘리베이터만 오가는 곳이었다. 계단으로만 중환자실 대기실로 갈 수 있었는데, 나는 어떤 숨겨진 방을 찾아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가 유난했던 것인지, 아니면 중환자의 보호자란 늘 그런 것인지, 보호자들은 오전과 오후 두 번 있는 면회 시간을 위해서 층의 복도를 개조한 보호자 대기실에서 잠도 자고 그랬다.

 

 우리는 다른 보호자들과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끼리의 유대가 생겼다. 음식을 나누기도 하고, 소식을 나누고, 때로는 절망도 나눴다. 그것이 깊고, 튼튼한 어떤 관계들은 아니었겠으나 바람이 훅 불면 꺼질 듯 보이는 불빛에 희망을 걸어두고 있는 사람들은 얇게 바른 종이 창 같은 이 관계에도 꽤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다. 중환자 대기실의 사람들은 떠날 것이 예정된 사람들이다.

 

 보호자들 중 눈에 띄게 젊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환자가 욕실에서 샤워를 하던 도중 갑자기 쓰러졌고,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했다. 말을 곧잘 할 수 있어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얼굴과 몸의 일부를 움직이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그 후 의식을 다시 잃어 중환자실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 내가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 뿐이다.

 

 면회 시간이 가까우면 대기실이 어수선해진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 때의 기분은 소풍 날의 기분과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식초 섞인 밥과 참기름 냄새가 코끝에 느껴지는 날. 대기실에는 그 때 부엌을 채우는 묘하게 어수선한 기운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이 환자에 대한 희망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대기실 앞에 줄을 서서, 면회증을 받았다. 체열을 측정하고, 손을 씻는 방으로 들어갔다. 중환자실과 대기실 사이에 거쳐가는 공간이었다. 초등학교 수돗가에서 볼법한 철제 개수대가 있었고, 수도꼭지에서는 물 대신 검붉은 용액이 흘렀다. 나는 그 용액의 코를 찌르는 향기가 좋았다.

 

 중환자실에 들어온 보호자들이 각자의 환자가 누워있는 곳을 찾아 향했다. 환자는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불분명하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다. 많이 호전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때의 나는 그 말을 믿지 못했던 것 같다. 환자의 손과 발을 주무르다가 나는 주변을 잠깐 둘러봤다. 그리고 어떤 말소리를 들었다. 그곳에서는 듣기 어려운, 밝고 명랑한 톤의 대화 소리. 말을 하고, 웃는 보호자.

 

 환자가 의식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젊은 보호자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벽이 가로막고 있어서 그 모습을 뚜렷하게 볼 수 없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궁금했다. 나는 환자를 살피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당연히 크게 혼났다. 그게 중요하냐고 말이다.

 

 나는 여기에 어떤 의미도 두지 않는다. 내가 왜 우리의 환자를 놔두고 다른 환자가 보고싶었는지 하는 것 따위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병실을 찾아갈 때면 나는 늘 그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꼭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무력하게 누워있는, 보호자가 현재 있거나, 없는 사람들을 말이다.

 

 나는 이번에 요양병원에 가서도 그런 사람들을 봤다.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도 친절했다. 마스크를 쓴, 내 또래로 보이는 간호사가 환자들에게 이따금 말을 걸었다. 그 사람은 어떤 환자와 가볍게 공을 주고받고 있었다. 작은 웃음 소리가 들렸다. 공을 주고 받는 간호사와 환자는 모두 웃고 있었는데 거짓 같지 않았다. 나는 그쪽으로 자꾸 시선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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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10 오후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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