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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와 글쓰기/글쓰기

보름

by manydifferent 2019. 1. 27.

 당신이 입을 뗄 때마다 나는 병실에 누워있는 당신을 떠올린다

꼭꼭 씹으세요

당신의 심정은 반찬 투정하는 아이의 심정이었을까

입에 가득 물고 있는 밥알들이, 찬들이, 삶의 가능성들이, 싸움의 여지들이, 풀리지 못한 오해들이, 답이 없는 숙제들이, 넘어가야 할 무언가가

한껏 물러진 채로 식도를 타고 넘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갖 주술적인 것들을

모빌처럼 달아놓는다

 

모빌은 순순히 돌아가지 않아

당신 곁에서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오늘은 복도에 보름달이 떴다

1인실은 트윈베드

키가 낮은 침대에는 더 병약한 환자가 몸져눕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다

 

키가 높은 침대에는 보름달이 둥근 모양으로 보일까

그건 또 얼마나 예쁠까

투정의 말을 삼킨다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마른 침

차라리 내가 누울래

더 병약하고 덜 병약한 환자들은 다투어 번호표를 뽑는다

승자는 차분하게

 

보름달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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