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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와 글쓰기/글쓰기

마포대교와 마포대교를 걸어 지나는 사람들

by manydifferent 2019. 3. 16.






 고등학생 때, 갑자기 마포대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습시간에 마음이 답답하면 자살명소 같은 말들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던 시기였다. 그 때 나는 자살하고싶다는 말을 혼잣말처럼 해대었지만 그건 사실 막연한 농담이었다. 그저 너무 멀고 터무니 없어서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했던 말이었던 거다. 나에게는 이따금 좋은 일도 있었고, 무엇보다 무언가를 저지르기에는 무력했으므로 어떤 구멍에 완전히 빠지지 않은 채로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나는 당시에 마포대교를 찾아갔다. 나는 마포대교가 (가보지도 않은)남산타워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떤 역에서 나와 그저 걸었고 직접 본 마포대교는 그냥 다리였다. 그리고 다리에서는 '자살 명소' 스러운 것들이 나를 반겼다. 그것은 어떤 문구나 사진. 높고 매끄럽게 올라있는 난간 같은 것들, 그리고 삼성 어디에서 시설 조성을 위해 기부를 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다리의 중간쯤 오니 나는 정말로 이곳에 놀러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리 위가 현실과 동떨어진 공간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전시회가 아닌가. 다리의 난간을 따라 붙어있는 문구들은 어떤 메세지를 주고 싶어했다. 나는 그것들이 여길 걷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문했다. 내가 다리의 반대편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내가 본 문구들이 역순으로 붙어있어서, 이토록 현실감이 없는 것은 아닐까. 여러 의문들이 머릿 속을 지났다. 하지만 나는 자살을 하기 위해 마포대교에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대답은 내가 나만의 이유로 그 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영영 모를 일일 거다.



 그곳에서 내가 본 문구와 사진들은 대부분 부모나 애인, 자녀들의 말과 모습을 담고 있었다.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것들을 기획하고 편집한 사람들 중에는 정말 죽으려고 해본 사람이 없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마 그들의 가정은 붕괴하지 않았을 거다. 그들의 애인은 그들을 배신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의 자녀는 속을 썩이면서도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그 사실과 거리를 둘 수 없는 사람들만 자살을 선택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지금도 내가 무슨 근거로 그것을 확신했는지 모르겠다. 웃긴 것은, 나는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여전히 그 다리 위의 모든 것들이 아무 쓸모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거다.



 나는 다리를 장식한 농담같은 이야기들에 웃음이 났다. 나는 반대편으로 들어왔으므로, 다리를 가로질러간 끝에서 마포대교라고 써 있는 돌을 만났다. 나는 그 앞에서 내 존재가 너무 가벼워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이상한 공간은 현실성이 없었다. 지금의 나는 그 때 보았던 문구와 사진들보다는 유난히 날카롭게 불던 바람이 기억난다.


 나는 아직도 그 때 내 확신을 설명할 수 없고, 또 마포대교에 서있을 누군가를 이해할 수도 없다. 다만 그 날의 경험은 씨앗처럼 뿌려져 내 머리에 어떤 뿌리를 박고있다.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해 말하려는 노력은 하지 말자. 그 일그러진 틈으로 어떤 사람들은 훨훨 날아가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들이 왜 이곳으로 찾아오는 지, 넘기도 힘든 난간 사이로 무거운 몸을 밀어넣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와 똑같이 죽음을 두려워 하는 누군가가 어떻게 물 아래로 몸을 내던질 수 있는지, 마포대교를 걸어 지나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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