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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와 글쓰기/일기

2019년 5월 16일 인후통과 나

by manydifferent 2019. 5. 16.

 장염으로 한 사흘 고생했는데, 주말 이후에 몸살이 났다. 월요일날 목과 코가 연결된 부위가 답답하고 아팠는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PT를 받았다. 그 날 저녁 잠도 오지 않고 목이 너무 아팠다. 새벽 5시가 넘도록 깨어있었다. 수요일쯤 되자, 목이 아픈 건 많이 나았는데, 몸살 기운이 몰려왔다. 목요일인 오늘까지 골골대고 있다. 왜 아팠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하루 이틀이면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원래 자주 아픈 편이다. 환절기면 꼭 한 번씩 아프고, 신경 쓰는 큰 일이 있거나, 일정이 빡빡해도 금방 병이 난다. 인후통이 눈에 띄는 전조 증상인데, 주로 눈치를 못 챈다. 그냥 불쾌한 증상이라고만 생각한다. 앞으로는 인후통을 느끼면 바로 신경을 써줘야지 싶다.

 

 아무데도 안 나가고 누워만 있으니 심심했다. 아픈 시간을 얼른 보내려고 의미 없이 게임을 했다. 별로 재미는 없는데 시간 잘 가는 게임 말이다. 보통은 그런 것들을 안 하고 싶어서 지워버리는데, 아플 때는 그런 생각이 안 든다. 그냥 한다. 원래는 카카오톡을 안 쓰는데, 최근에 무슨 이유로 깔았었다. 의미 없이 친구목록 뒤져보는 것도 그렇고, 단체 채팅방이나 채널, 쇼핑 기능을 뒤적거리는 것도 싫다. 그래서 쓰지 않았던 거다. 나는 하면서 의심이 강하게 드는 것은 하지 않아야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래 하던 것에서 벗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일종의 저항같은 것이 있다.

 

 그래서 당장 게임도 지우고, 카카오톡도 탈퇴하고 삭제했다. 다른 사람들은 카카오톡을 어떻게 이용하는 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남의 프로필 사진을 참 즐겨 본다. 난 그게 싫다. 웃긴 것은, 볼 때는 한참을 보고, 한참 그 사람들에 대해서 실체 없는 생각을 하지만, 카카오톡을 지우고 나면 그런 일은 원래 없던 것 처럼 사라진다는 거다. 이런 것들에 불필요하게 시간을 쓰고, 마음을 쓸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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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몸이 며칠 아프고 나면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든다. 아팠던 시간도, 아프지 않고 살았던 시간도 너무나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나는 어떻게 살았었지? 사실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도, 과거의 내 모습들이 어떤 뚜렷한 질서에 의해 움직여왔던 것 같다. 아플 때는 그냥 얼른 나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모든 걸 미뤄놓지만, 몸이 나을 때 쯤에는 앞으로의 날들, 아니 당장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할 지가 막막한 것이다. 과거의 나는 늘 열심히 살았던 것 같고, 현재의 나는 늘 나태해 보이는것 처럼 말이다.

 

 이 대책 없이 텅 비어있는 하루가 주는 낯설음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내가 공을 들여 비워놓은 이 시간에 무의미하게 게임을 하거나, 남의 프로필 사진을 뒤적거리면서. 페이스북 같은 것을, 내가 이것들을 보고있다는 것에 화가 나서 지칠 때까지 보는 것을 그만두었을 때. 소름끼치도록 비어있는 이 시간이 주는 적막. 여기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운동을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과 같다.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 익숙해지는 거다. 그 불편함. 내일이면 잊을 것들을 온 신경을 곤두 세우고 익히는 것. 늘 내 힘이 닿는데까지 오늘 몫을 해내는 것. 앞으로도 이 느낌을 기억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이걸 무서워한다면 나는 죽어있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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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두달 있으면 내가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 일 년이 된다. 이제 일상적인 내용의 드라마 영어 자막을 눈으로 좇을 정도는 된다. 나는 이게 놀랍다. 아무런 갈피도 잡지 못하고 시작한 것인데 그 과정에서 배운 것도 많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자신감이 생겼다는 거다.

 

 영어 단어를 외우면 다음 날에는 잊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그렇게 3일을 외우면 잊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내가 바보라서가 아니라는 것. 하루에 많은 양을 하려는 것보다, 매일 꾸준히 할 수 있는 양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걸 찾는 데에는 시행착오가 필요하다는 것. 모르는 것은 들리지도 않고, 볼 수도 없다는 것.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듯, 모든 것이 눈에 익는 과정이라는 것. 그동안의 실패와 성공의 합이 내 실력이라는 것. 꾸준히 무언가를 했을 때,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현실적인 눈이 생긴다는 것.

 

 2019.05.16 p.m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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