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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와 글쓰기/일기

2017년 11월 13일 모텔에서의 나

by manydifferent 2019. 1. 27.

 2017.11.13. 월요일. 오늘은 장소까지 적어볼까 한다. - 모텔이다.

 

날씨. 날이 추울걸 예상하고 따뜻하게 입어서 그런지 목이 조금 추운 것 빼고는 다닐만 하다. 아, 가장 따뜻할 때 돌아다녀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별안간 나는 글쓰기를 인생의 구원으로 여기고 있다. 웃기지 않나. 하지 않는 것. 갖지 않은 것을 삶의 구원으로 여긴다는 것이 말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구차하지만 사족을 달아놓는다. 짧다. 그리고 우습다.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다. 우습다는 것은 세상이 만만하다는 말이 아니다. 삶은 짧고, 한 번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쉽게 우스워진다. 나는 세상일에 간단히 겁을 먹는다. 정말 모양 빠지는 일이다. 세상이 이렇게 우습기 때문에 나는 곧 정말 우스운 사람이 된다. 글을 쓰는 것을 기적처럼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다는 것은 단순한 욕망의 문제다. 너무 간단하고 단순하고 필연적이고 기쁨 자체다. 살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는다고? 젠장. 또 우스워 진다.

이 욕망의 문제는 섹스처럼 도무지 간단하지가 않다. 황홀하게 찾아오는 섹스의 쾌락 이전에 자리를 펴고, 벽을 세우고, 주변을 정돈하고, 그래. 하나의 집을 짓는 노동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나는 더 생각해야 한다. 더 써야한다. 아니 일단 써야한다. 귀찮고, 피곤하고, 때로 허리가 아프고, 나를 감싸고 연막처럼 눈을 가리는 날파리떼 같은 것들에게서 나는 굳이 진저리를 쳐야한다. 가만히 있는 것은 아주 쉽다.

요즈음 드는 생각이 있다. 노래를 부를 때에 온몸이 죽처럼 녹아 세상에 들러붙어있는 황홀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게 너무 좋아 도무지 노래 부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글 쓰는 일은 도대체 매일 하고 싶어 미칠 정도로 기쁘지 않은걸?

더 나은 노래를 부르고 싶은 욕망이 또 하나 있듯이, 글쓰기에는 그런 일종의 기제가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때로는 그 기제가 글 쓰고 싶은 욕망을 이긴다. 나는 더 나은 노래를 부르고 싶어 몸서리치던 시절을 기억한다. 즐거움을 앗아갈 정도였다. 내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욕망을 시들하게 만들 정도였다. 내가 지금 일기 쓰기에 (질서 없는 기록) 목을 매는 이유가 그것 같다. 화장실에서 노래를 부르는 행위. 아무도 없는, 온전한 내 기쁨을 누리는 행위 말이다.

이렇게 말하니 정리가 된다. 행위에 대한 욕망과, 더 나아지고 싶은 욕망. 그 둘은 나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행위에 대한 욕망 없이는 두 번째 욕망은 실현될 확률이 0에 가까운데도 두 번째 욕망은 쉽게 첫 번째 욕망을 이기고 만다. (이것이 재능에 대한 찬양과 무력감으로 드러난다. 아주 끔찍해.) 그러니까 난 일단 쓴다. 그래도 난 알고 있다. 이제는 화장실에서 나와야 해. 나와야 한다. 고작 춥다는 이유로 나오지 못하면 난 분명 화장실에서 목을 매고 만다. 아님 그곳이 집이자 세상이라고 자위하겠지.


PM.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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