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와 글쓰기/일기

2017년 11월 20일 장면들을 떠올리는 나

by manydifferent 2019. 1. 27.

 2017.11.20 월요일

 

날씨: 무더위와 마찬가지로 추위에도 안정기가 있다. 온통 파란 빛깔을 띠는 하늘이 눈에 익고, 코 끝에 가닿는 겨울 냄새도 마음을 들쑤시는 대신 찡하도록 차갑게 맺히기만 한다. 이제 입김은 눈에 선 풍경이 아니다.

 

떠오르는 말이 없다. 문제는 떠오르는 말이 없음을 죽음의 한 형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모파상의 비곗덩어리를 읽고 떠오르는 생각이 없다면? 북받치는 감정은 있어도 흐르는 눈물 묘사할 능력이 없다면? 난 죽은 것인가.

다행이도 떠오르는 장면은 있다. 버스에서 현금으로 승차비를 지불하는 승객과 자리에 앉기를 종용하는 기사. 승객은 정당한 행위를 위해 친절한 미소를 걸어놓고 값을 물었고, 기사는 달리는 버스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승객을 걱정했다. 둘의 표면은 누가 봐도 문제가 없어보였지만 어쩐지 불편했다. (나는 왠지 어쩐지 불편하다는 말에 밑줄을 긋고 싶어진다.) 겉으로 들어난 말들과 행동이 일종의 습관처럼 느껴졌다. 승객의 미소, 기사의 배려. 친절이란 대부분 습관인 경우가 있으며 그건 일종의 자기 방어이지 상대에 대한 진심어린 배려가 존재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여기서 배려란 숙고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많은 말들을 지워버리는 것. 그리고 듣는 것. 이성복 시인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사이란, 나를 죽이고 사이가 되는 것.)

나는 그런 불편한 것들을 어떻게 눈치 챘을까? 크던 작던 불편함이 터져 나오는 지점이 없다면, 내 추측은 그저 의혹에 머물고 만다. 내가 생각하는 이야기의 힘은 여기에 있다. 터져 나온다. 감정은, 불편함은, 의혹은, 실체를 만든다. (힘의 크기는 여기서 결정된다. 어떤 것이 어떻게 터져 나오느냐. 전자가 힘이 없다면 이야기는 실이 없는 것이 되고, 후자가 힘이 없다면 혹은 너무 힘이 강하다면 그것은 뻔한 것, 불편하기만 한 것,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승객과 기사의 예를 들기 위해 나는 그들의 대화를 가져온다.

 

버스 비가 얼마에요?

위험하니까 들어가 앉으세요

...

이천오백 원이에요. 앉으세요, 일단.

...방금 삼천 원 넣은 것 같아요

예?

...삼천 원 넣은 것 같다구요. 천 원 꺼내줄 수 있어요? 어떻게 지폐 두 장이 겹쳐져서..

얼마 넣었다고요?

총 삼천오백 원요.

그러게 아까 앉으라고 했잖아요. 일단 가서 앉아요. 쯧.


나는 이 대화가 왜 불편했을까? 왜 승객과 기사가 불편해보였을까. 그것은 비단 대화의 끝에 뿜어져 나온 매연처럼 들린 쯧 소리와, 승객의 언짢다는 표정과 행동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불편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대화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

비슷한 일화가 떠오른다, 행선지를 모르고 잡아탄 버스에서 내리는 승객이 승차비 환불을 요구했던 그 일도 그렇다. (승객을 딱하게 여긴 기사가 오천 원 지폐는 거슬러주기 힘드니 번호를 남기고 가면 보내주겠다. 와 호의가 전혀 호의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냥 지금 주세요. 하고 동전을 잔뜩 받아 인사 없이 내리던 승객.) 음, 다른 일화는 당장 기억이 나지 않는다. 조금 더 열심히 기록해야겠다.

그리고 생각나는 장면. 사내에서 양치를 하는 두 사람. 묘한 권력 관계. 이를 닦는 내내 상대가 틀어놓은 물줄기를 불편해하는 사람. 늘어놓는 소리들을 견디지 못하지만 그 사람은 친절을 잃지 않는다. 친절할수록 상대의 양치 하는 모습이 편집증적으로 확대되어 보이고,세면실 내의 수도가 전부 틀어져 있는 상상이 시작된다. 귀를 틀어막을 정도로 들려오는 물소리가 결국은 상대의 말소리를 묻어놓고 습관 같은 친절의 말들로 대화를 이어가는 장면이다. 대화는 물소리가 귀를 틀어막아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내가 불편하게 여기는 대화의 단면이다. 쓸 수 있을까?

PM. 12.4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