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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와 글쓰기/일기

2017년 11월 14일 토사물을 바라보는 나

by manydifferent 2019. 1. 27.

2017.11.14. 화요일

날씨. 확실히 춥다. 추울 걸 예상하고 옷을 한참 껴입고 나가니 실내에선 퍽 더웠다. 내일부턴 영하의 기온인가보다. 추워진다.

 

우리는 잠깐씩만 깨어있다. 대부분은 습관 같다. 어떤 행성의 궤도를 이탈한 돌덩이는 중력 바깥으로 떨어져나갈 때 까지는 조금 깨어있지만, 곧 습관처럼 또 다른 행성 주위를 맴돌기 마련이다. 습관이 나쁜 것 같지만, 습관이 없다면? 궤도를 벗어난 돌덩이가 어떻게 되는지 보라.

나은 삶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더 친근한 행성으로 적을 옮기는 것과 같다. 나는 아주 잠깐 깨어있고, 그 순간 혼신을 다해 궤도를 이탈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부분을 습관에 의존에 살고있음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항상 깨어있을 수는 없다. 그건 힘이 많이 든다.

우연한 계기로 윤이형의 인터뷰를 보았다. 글도 쓰지 않는 주제에 3년간의 공백이 있다는 작가의 말에 위안을 얻다니. 위안을 얻는 순간 나는 잠깐 깨어있을 수 있었다. 작가가 제 1독자라는 말도 좋다. 오로지 제 1 독자뿐인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렇다. 사실은 글이라고 쳐주기도 끔찍하게 창피하다. 아무도 마주칠 일 없는 어둡고 음침한 골목에 주저앉아 토악질을 해대는 꼴이다. 기생충 투성이의 날 것들. 이건 그냥 토사물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마저도 사랑스럽다.

나는 기술자도, 발상 기계도 아니다. 기록하는 사람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하는 사람. 적는 사람. 말하는 사람. 기록하고 말하고, 적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사람이 그리워 어거지로 찾아간 술자리에 말술을 하고 인사불성인 채로 꼴에 쪽팔린 줄은 알아서, 아무도 없는 구석자리에 가서 구토를 하는 사람. 그렇게라도 해야 속이 후련한 사람이다. 그래. 난 이렇게라도 해야 속이 후련한 사람이다. 그래서 토사물마저 사랑스러워 보인다. 다만 난 그걸 마냥 사랑할 수는 없다. 오늘은 조금 살아있다. 천천히 하자.

PM 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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