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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와 글쓰기/일기

2017년 11월 18일 알바하고 욕하는 나

by manydifferent 2019. 1. 27.

 2017.11.18 토요일 PM 7:42

 

최고 기온 1도 최저 기온 -7도. 오늘은 확실히 추운 날이다. 세상은 전체적으로 푸른빛이 도는 듯하고 겨울 특유의 무심한 냄새가 난다.

 

발이 뻐근해. 오늘도 일곱 시까지 출근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번 주말은 저녁 타임 누나의 결근으로 2교대 근무. 11시간을 채웠다. 사장은 13시간을 근무하겠지. 우린 계산하는 기계가 아닌데? 이럴 거면 편의점을 닫으셔야죠, 사장님! 겁 많은 노예는 집 열쇠를 맡고는 목숨을 걸고 집을 지킨다. 주인이라며? 몸이 피곤하면 쿨하게 문을 닫아둘 여유도 없는 거야?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 내가 어쩔 때 인간 대우를 받고 있는지, 요즘 둔감에 가까울 정도로 예민하단 생각이 든다. 너무 항상 예민해서, 이게 예민한 방향으로 둔한 건 아닌지. 그러니까, 예민한 상태 자체를 의식 없이 지속하고 있는 지는 아닌지 말이다. 그래도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 고민하는 데는 조금 힘이 된다. 정중한 언어로 값을 지불하는 손님보다, 돈을 툭툭 던지면서도 폐기 삼각 김밥을 입에 쑤셔 넣고 있을 때 아침 먹냐고 물어보는 아저씨. 쓰레기를 입에 꾸겨 넣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이냐고 물어보는 사람. 반말을 하고, 돈을 던지고 하는 것에 정말 기분 나쁘다라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 아저씨 그럼 안 되죠. 라고 ‘말’ 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 모순 같지만 그렇다. 난 그럴 때 인간 대우를 받는 사람이 된다. 아니 받아야 되는 사람이 된다. 이제는 자판기가 흔해져서 자판기를 발로 차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인간 대우에 대해서. 세 종류가 있는 것 같다. 자판기라고 하니까 떠올랐다. 1번 개 쌍놈. 돈 던지고, 무시하고, 날 계산기 취급하는 사람들. 2 번. 젠틀한 신사들. 이 사람들은 자판기와 계산기를 사용하는데 이미 능숙하다. 자판기가 좀 버벅인다고 해서 발로 차는 것이 해결법이 아닌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건 폼이 안 난다. 그들은 젠틀하지만, 내가 자판기 따위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런 젠틀한 신사들을 만나다보면 난 종종 내 위치를 잊는다. 3번. 3번은 그냥 인간 대우다. 나한테 젠틀하게 대하던, 욕을 하던, 이 사람들은 날 인간으로 대우한다. 예를 들면 밥. 그들은 봉투 값을 받냐며 욕을 하고 잔뜩 꺼내놓은 술병들을 카운터에 두고 사라질지언정 날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난 아직 이 인간 대우가 뭔지 잘 모르겠다. 느낌은 너무 확실한데, 어떤게 날 인간으로 느끼게 하는지를 모르겠다.

내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걸 좀 알았으면 한다. 아니, 알진 못하더라도 그런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알고 싶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조금은 알고 있다.

 

그리고 조금 생각난 것. 정확히는 같이 사는 A가 8시에 쳐대는 피아노 소리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보다 먼저 피해를 보고 있을 이웃집이 먼저 떠올라서 말이다. 생 음악은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건 시끄럽다. 고른 선율이 연주되기까지 얼마나 끔찍한 불협화음이 있었나. 아름다운 음악은 누구나 듣는다. 고막은 물론이고 뇌 어딘가까지 통통 울릴 정도로 끔찍한 음악을 들어주는 일은 사랑에 가깝다.

물론 내가 A의 피아노 소리를 부끄러워한 건 A를 그만큼 싫어하기 때문이겠지. 이웃 눈치를 본다니? 내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 다 아는데. 그래봤자 성가신 정도로 여기면서, 그들 눈치를 본다고 생각한 건 그만큼 A의 음악을 하찮게 여겨서다. 그래 그건 나도 알아. 가끔을 별로 알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어쨌든 음악은 시끄럽다. 정말 어쩌다 좋은 선율인 경우가 많다. 살고 있다는 건, 그 중에서도 누굴 만난다는 건 끔찍한 선율을 들어주는 일. 그 끔찍한 선율을 사랑하게 되는 일일까. 오늘은 많이 피곤하다.


PM.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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