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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제들/음악

신도림과 스트립쇼 (일탈-자우림)

by manydifferent 2019. 3. 16.






오늘 처음으로 신도림역에 와봤다. 나는 이 노래가 생각이 나서 들었고, 줄곧 품던 의문이 해결됐다.


왜 하필 신도림역에서 스트립쇼를 하는 걸까? 하는 의문.


신도림역에는 사람이 참 많았다. 난 와본적도 없는데 누군가가 어떤 공간을 매일 이렇게 가득 채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묘한 기분이 든다. 나는 사람들에 치이다가, 역 어딘가에 조금 트인 공간(환승을 위한 사람들의 개미 행렬 밖의) 에 섰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다.


여기서 스트립쇼를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러자 가사가 모두 이해됐다. 어떻게 할 일이 쌓였는데 훌쩍 여행을 갈 수 있을까? 그건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 보기 하루 전에 삭발을 해봤자, 상대는 내가 원래 장발이었는지 민머리였는지 알 턱이 없다. 애인이 아닌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는 더더욱 없다.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을 춰도, 비오는 겨울밤에 벗고 조깅을 해도, 도대체가 경찰에 신고하는 것 말고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을 거다.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하면 아마 죽지 않을까? 근데 왜 기꺼이 그럴 수 있을까? 이 말에 의문을 품었을 때 그러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면, 누군가는 마음 편히 뛰어내릴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이것은 삶의 의미나 의지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노래 가사가 위악적이며, 존재하지 않는 삶의 재미를 일탈하는 방식으로 찾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하겠다는 노래를 부르는 것'에 집중해야한다. 그 누군가는 이 굴레를 벗어나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화끈하고 신나는 일을 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할까


그 누군가는 무의미의 모래 위에 집을 새로 지어야할 지도 모른다. 일탈을 하는 순간 일탈된 삶은 더 이상 일탈이 아니라 그저 삶이기 때문이다. 신도림에서 스트립쇼를 해도 놀랍도록 무심한 인파들 속에서, 헐벗은 몸뚱아리를 모시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아마 옷부터 좀 입어야할 것 같다. 맛있는 것도 좀 먹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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