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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제들/음악

유리되지 않은. 형식을 갖춘. (장기하와 얼굴들-거절할 거야)

by manydifferent 2019. 6. 15.

 

[Official Audio] 장기하와 얼굴들 (Kiha & The Faces) - 거절할 거야

 

[mono] 일곡일담 by 장기하


0. 프롤로그 : 모노
전곡을 스테레오가 아닌 모노로 믹스했다. 60년대 이후로 대중음악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비틀즈 1집의 오리지널 모노 엘피를 구해 듣고 충격 받았던 적이 있다. 소리들이 좌우로 펼쳐지지 않고 가운데에 다 몰려 있는데도 모든 악기가 명료하게 들렸고, 뭐랄까, 묘하게 더 집중하게 되는 사운드였다. 그때부터 모노 믹스를 꼭 한 번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이번 곡들을 다 쓴 후 늘어놓으니 공통된 키워드가 “혼자”였다. 함께가 아닌 혼자... 스테레오가 아닌 모노...! 확신이 들었다. 이번 음반은 모노여야 해! 제목도 모노! 믹스도 모노! 결과는? 여태까지의 음반들 중 가장 훌륭한 밸런스를 담아냈다고 자부한다. 즐겨 주시기 바란다.

 

 

 우연히 장기하와 얼굴들 마지막 앨범에 빠지게 됐다. 앨범 소개란에 수록곡에 대한 짧은 글들이 함께 있었다. 재미있었다.

 

 수공업 싱글 싸구려커피가 나왔을 때, 여건이 안 되서 그 싱글 앨범을 못 샀다. 그렇게 그 후로 발매된 정규 1집 별일 없이 산다는 나의 생애 첫 앨범이 됐다. 큐브 모양 256MB MP3에 장얼의 1집을 넣고, '멱살 한 번 잡히십시다'를 듣던 내가 기억난다. 친하지도 않은 반 애들이 이어폰을 뺏어 듣고는, 무슨 이런 노래를 듣냐며 비웃었다. 누구 멱살 잡고 싶은 사람 있냐고 했던 것 같다. 그렇다. 장얼은 음악에 삶을 담아내고 있던 거다.

 

삶을 담아냈다고 해서 사랑받을 수 있을까? 삶은 담아내면 담아낼 수록,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것이 아닌가. 나는 사랑받는 무언가는 삶을 담아냄과 동시에, 어떤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형식은 주제가 '모노'이기 때문에 모노로 믹스했다는 장기하의 말처럼 매력적인 방식이면 좋겠다.

 

장얼의 노래에는 내가 평소에 메모장에 담아둔 듯한 삶의 단면들이 있다. 하지만 내가 메모장에 담아만 둔 것처럼 건조하고 재미없지는 않다. 삶과 유리되지 않음. 매력적인 형식을 갖춘. 그게 바로 장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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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집에 사람의 마음이라는 노래가 있다. 지금이야 괜찮지만, 당시에 떠올리기만 해도 힘든 기억이 있었다. 밤에 자려고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정말 우스운 얘기일 수도 있겠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듣고,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나는 그게 여전히 고맙다. 이렇게 내 삶의 어떤 부분들을 떠올리면, 가볍게 뭉그러지는 장면들 뒤로 들리는 음악들이 있다.

 

 

 

 

 

 2019.06.15 오후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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