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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와 글쓰기/글쓰기37

마포대교와 마포대교를 걸어 지나는 사람들 고등학생 때, 갑자기 마포대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습시간에 마음이 답답하면 자살명소 같은 말들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던 시기였다. 그 때 나는 자살하고싶다는 말을 혼잣말처럼 해대었지만 그건 사실 막연한 농담이었다. 그저 너무 멀고 터무니 없어서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했던 말이었던 거다. 나에게는 이따금 좋은 일도 있었고, 무엇보다 무언가를 저지르기에는 무력했으므로 어떤 구멍에 완전히 빠지지 않은 채로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나는 당시에 마포대교를 찾아갔다. 나는 마포대교가 (가보지도 않은)남산타워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떤 역에서 나와 그저 걸었고 직접 본 마포대교는 그냥 다리였다. 그리고 다리에서는 '자살 명소' 스러운 것들이 나를 반겼다. 그것은 어떤 문구나 사진. 높고 매끄럽.. 2019. 3. 16.
20180820 나의 음울함에 대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았다 교통사고에 대한 경험을 이런 방식으로 기억하진 않을 거다. 나는 나의 경험들을 더 자세히 기록하고 싶다. 어쩌면 이것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 아니라 가능한 것일 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내 얘기가 영화에 등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무대에는 갑작스레 찾아온 불행만이 오른다 보다 눈에 띄고, 설명할 수 있는 것들. 사람을 한순간에 죽음으로 몰고가는 것들 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어디서 시작해야할 지도, 어디에 마침점을 찍어야할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며 끝을 원하는 것이 나약한 스스로가 만들어 낸 환상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이건 충분히 나에게 힘든 일이며 물살이 거세서가 아니라 .. 2019. 2. 12.
20180106 기록 아침 알람 밤새 유리잔을 휘젓는 소리가 들렸다 약에 취해 자폐아처럼 소주와 오렌지주스를 섞고 있을 네가 떠올라 나는 넌더리가 났다 아침 알람같은 것들에겐 실은 화를 낼 수가 없는 거다 근데 왜 하필 그게 쉬이 섞이지 않는 꿀물이었는지 목을 축일 짐승새끼가 나였는지 눈치 없이 주말 아침에 울어대는 알람에게는 욕을 해도 되었는데 2019. 2. 12.
20180109 기록 실은 초저녁 그 날 기적처럼 모두가 잠들어 당신이 죽어버렸다면 나는 당신을 다르게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터무니없는 슬픔에 웃음이 나듯이 당신이 없는 자리에 납덩이같은 낭만이 자라야했는데 제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노인을 매 시간 일으켜주는 것은 솔직히 금방 싫증이 나는 일이잖아 그러니까 이제는 노인이 되기 전에 죽어버린 것들을 낭만이라고 부르자 2019. 2. 12.
20171230 기록 하늘이 끓어오르다 만 잿물처럼 있다 빗물을 후둑 토해내지 못하고 도심을 비껴 걷는 대머리들의 머리칼이 가여워 비가 영영 오지 않는다고 한다면 빗물보다는 착란에 빠져있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행여 밥을 굶을까 걱정하는 것 차도에 드러누운 사내가 차를 우습게 여길 거라 생각하는 것 광기을 지탱하는 것은 광기가 아니다 착란에 빠져도 쏟아지는 것들이 있다 고개를 쳐들어보니 서럽다 비가 내리기 직전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다 2019. 2. 12.
20171229 기록 그의 입에서 딸국질처럼 개판이라는 말이 나온다 곧 이어, 배차 시간이 몇 분이에요 녹음기같다 그는 모두 안다 정신이 박약한 그의 귀는 배차 시간이 개판인 정류장의 녹음기다 조용히 좀 하세요 녹음기는 녹음기에게 한 말마저 녹음한다 잡음이 떠나면 그는 침묵한다 2019. 2. 12.
20171207 기록 죽은 사람이 거기 있다 죽은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만큼이나 흔하다 살아있는 사람은 그보다 적지만 마찬가지로 흔해 빠져서 이제는 고민이 생긴다 땅바닥은 움푹 꺼지기보다는 치받쳐오르는 모습이 익숙하다 꼭대기에 내걸린 땅바닥 위에 공처럼 얽힌 것들은 시신으로 보아야할까 죽은 사람으로 보아야할까 썩어 부풀어오르는 피부의 결을 유심히 보고 있자면 숭고함을 느끼기 전에 구역질이 난다 살아있을 때 제 몸을 방부제에 절여두는 일은 미덕이라기보단 의무다 그건 이제 신성하지도 않다 2019. 2. 12.
2018년 마지막 날의 나 12시가 한참 넘었다. 허기가 졌다. 뭐라도 입 안에 넣을 것을 찾아 어슬렁 대다가 비닐봉투 속에 들어있는 밥을 봤다. 최대한 조심히 봉투를 열어 수저를 넣었다. 급하게 밥을 꺼내 입에 넣다가 밥을 흘렸다. 작은 밥 몇 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밥이 상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냉큼 개가 달려와 밥을 주워 먹었다. 나는 개의 엉덩이를 너무 세게 때렸다. 내가 입에 한가득 물고 있는 상한지 의심스러운 밥과 부엌 오만 곳에 흘린 밥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떨어진 밥알을 찾아 물고 도망가는 개. 무엇이 마음을 비참하게 만드는 지 모르겠다. 2019. 2. 12.
나의 역사적인 순간 떠오르는 내 삶의 역사적 순간에 대해서 얘기하겠다 그 날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예를들면 직장에서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내가 감내할 만큼의 위력만 행사하여 나를 알아서 기게 만들었고, 집 안에서는 언제나처럼 내가 칼을 들고 자해하지는 않을 정도의 문제만을 일으켰다. 나는 매일같이 해오던 방식으로 적당한 양의 화를 낸 뒤 가라 앉지 않는 마음을 간직한 채로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희망 없는 내일이 오길 바라며. 나의 역사적인 순간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나는 늘 그래왔던 것 처럼 잠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항상 해오던 것과는 다르게 눈을 부릅 뜨고 방문을 열었다. 내가 무언가를 깨달아서 그랬을까? 그건 모르겠다. 별안간 나는 그 날 귀중한 사실을 알았다. 사람을 미치게 만들 정도로 힘든 일이란, .. 2019. 2. 5.
깨진 것들에 대해서 나는 깨진 그릇 조각이 깨진 관계보다 정직하다고 믿는다.왜냐면 그것은 방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다가, 밟아서 피가 났을 때 그것이 어떤 그릇이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관계를 깨뜨리기 보다는 그릇을 바닥에 던져서 깨뜨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왜냐면 그릇은 모아서 버리면 되지만 관계는 모이지도 않고 버려지지도 않아서 불쾌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아가 적극적으로 그릇을 바닥에 던져서 깨뜨리는 것이 인류애적이라고 느낀다.왜냐면 비슷한 다른 추상적인 것들이 깨지는 것은 높은 감수성 없이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주파수로 말하면서 그들에게 실망하기 보다는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잘 가다듬은 말과 상대에 대한 무한한 고려로 호소하기 보다는.. 2019. 2. 4.
이유는 그렇다 그럼에도 미래를 걱정하고, 준비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느라 쉽게 잠에 들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아마 이르게 죽지는 않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2019. 1. 29.
술 마신 사람은 없는데 있는 술병은 집을 만든다 술병이 집 안에는 없다술 마신 사람은 집에 있어도 술병은집에 없다 술마신 사람은 집에 있어도 술병은 없다그러니까 술 마신 사람이술병으로 보인다 술이 담긴 술병으로보인다 사람 대신에 술병이 보인다 집 안에는사람이 아니라 술병이 술 마신 사람은 집에 없고이제는 술병이 있다 술병이 걷는다 술병이술이 안 담긴척 하면서 걷고 술병이 도대체어떻게 술이 안 담긴 술병이 있냐 세상에 이제는술병이 거짓말을 한다 이건 다 술 때문이다 술병이거짓말을 하는 건 술 때문이고 술병이 술병이 되는것도 술 때문이다 술이 없었으면 이건 그냥 병이었을텐데 술병이 아니라 그냥 병 그래서 이건 그냥 병이라고 생각한다 -----이정도면 발전이라고 생각했다.술병이 줄어들고 술병을 채우는 사람들이 줄어들고이제 이 세상에는 담배만큼이나 술을 생각.. 2019. 1. 29.
보름 당신이 입을 뗄 때마다 나는 병실에 누워있는 당신을 떠올린다꼭꼭 씹으세요당신의 심정은 반찬 투정하는 아이의 심정이었을까입에 가득 물고 있는 밥알들이, 찬들이, 삶의 가능성들이, 싸움의 여지들이, 풀리지 못한 오해들이, 답이 없는 숙제들이, 넘어가야 할 무언가가한껏 물러진 채로 식도를 타고 넘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갖 주술적인 것들을모빌처럼 달아놓는다 모빌은 순순히 돌아가지 않아당신 곁에서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오늘은 복도에 보름달이 떴다1인실은 트윈베드키가 낮은 침대에는 더 병약한 환자가 몸져눕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다 키가 높은 침대에는 보름달이 둥근 모양으로 보일까그건 또 얼마나 예쁠까투정의 말을 삼킨다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마른 침차라리 내가 누울래더 병약하고 덜 병약한 환자들은 .. 2019. 1. 27.